[광복절 특집]광복 81주년, 상처를 넘어 화해로… 재일교회가 잇는 복음의 역사
정하라 기자 승인 2026.08.07 09:19 댓글 0
KCCJ 총회장 장경태 목사, 복음의 첫 관문 ‘일본’ 선교역사 조명
강제 통폐합의 역사 딛고 평화 연대… "성과보다 존중의 선교 요청"
한일 양국에서 8월 15일은 각각 ‘광복절’과 ‘종전일’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재일교회는 이처럼 엇갈린 역사 인식의 한복판에서 과거의 상처를 증언하고, 양국 교회의 화해와 평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감당해 왔다.
1908년 설립돼 2028년 선교 120주년을 앞둔 재일대한기독교회(KCCJ)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격랑 속에서 재일동포의 신앙과 정체성을 지켜온 교단이다. 오늘날에는 한국 8개 교단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연합해 사역하며, 재일동포를 넘어 일본인과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을 품는 다민족 신앙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제58회기 총회장이자 예장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파송선교사인 장경태 목사(일본 후나바시교회)는 광복 81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일본 선교의 역사와 향후 과제로 ‘화해와 존중’을 제시했다.
지난 6일 저스트지저스(대표:브라이언박 목사) 콘텐츠 ‘오이소’ 녹화를 위해 방한한 장 목사는 오는 9월 19일 일본 도쿄 아사쿠사 공회당에서 열리는 ‘다가요 in 도쿄’ 연합집회를 소개하는 한편, 일본 선교의 역사와 재일교회의 역할을 전하며 한국교회의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지난 6일 저스트지저스 녹화 현장에서 만난 장경태 목사는 "광복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가까워지는 것이 한일교회가 함께 걸어갈 길"이라며, 역사적 기억을 바탕으로 화해와 존중의 선교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저스트지저스 녹화 현장에서 만난 장경태 목사는 "광복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가까워지는 것이 한일교회가 함께 걸어갈 길"이라며, 역사적 기억을 바탕으로 화해와 존중의 선교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복과 종전, 같은 날의 서로 다른 기억
재일동포에게 8월 15일은 조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인 동시에 일본 사회와 함께 살아가며 양국의 미래를 성찰하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광복절’로 기념하지만,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기억하는 ‘종전일’로 받아들인다.
장 목사는 "같은 날 한쪽에서는 광복을 기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종전을 기억한다"며 "일본에서 맞는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되찾은 자유를 기뻐하는 동시에 앞으로 두 나라가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현장이다. 1919년 2월 8일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발표된 ‘2·8 독립선언’은 국내 3·1운동에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식민지의 중심부였던 일본에서 유학생들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결을 외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장 목사는 "일본 땅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부림친 청년들이 있었다"며 "그들의 용기와 외침도 광복의 역사와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복은 재일교회가 빼앗겼던 교회의 주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일제 말 일본기독교단에 강제 편입되면서 우리말 예배와 독립 교단으로서의 권리를 잃었다. 그러나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일본기독교단 탈퇴를 결의하고, 같은 해 12월 공식적으로 탈퇴를 통고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적 분리를 넘어 식민지배 아래 훼손됐던 신앙공동체의 정체성과 자치권을 회복한 사건이었다. 장 목사는 "‘탈퇴 통고’에는 빼앗긴 신앙공동체의 주권을 스스로 되찾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광복은 나라가 해방된 날인 동시에 재일교회가 독립된 교회로 다시 서게 된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쟁의 상처 넘어 ‘평화의 동역자’로
과거의 상처는 단절이 아닌 화해로 이어졌다. 일본기독교단은 1967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협력하고 아시아 교회를 억압했던 책임을 고백했다. 이어 1984년 재일대한기독교회와 선교협약을 체결하면서 양 교단은 종속이 아닌 대등한 선교 동반자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현재 양 교단은 총회장 명의의 공동 평화메시지를 발표하며 한일교회의 역사적 책임과 평화의 과제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올해 메시지에는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전쟁 반대, 재일외국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교회의 책임이 담겼다.
이는 과거의 가해와 피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을 오늘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공동 실천으로 확장한 사례다. 장 목사는 "피해를 당했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며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재일교회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공동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장 목사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화해는 아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광복절도 과거의 아픔만 되새기는 날이 아니라 오늘의 평화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준비된 조선 복음화의 길
30여 년간 일본에서 사역한 장 목사는 한일 선교의 역사 역시 갈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일본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이수정은 미국 선교부에 조선 선교사를 요청하고 우리말 마가복음을 번역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도 조선으로 향하기 전 요코하마에서 이수정을 만나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전달받았다. 한국 개신교 선교가 본격화되기 전, 일본에서는 이미 조선 복음화를 위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인을 섬긴 일본인 선교사들의 헌신도 한일 선교 역사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노리마쓰 마사야스와 ‘전영복’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재일동포를 섬긴 오다 나라지 등은 민족과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며 한국교회와 재일교회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장 목사는 "한국 선교가 미국에서 곧바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길을 준비한 역사가 일본에도 있었다"며 "갈등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러 민족을 통해 복음의 길을 이어오셨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일 양국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음세대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도 과거보다 좁아지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일본 청년들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한다. 재일동포 중심이었던 교회에서도 일본인 성도와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이 함께 예배하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장 목사는 이러한 변화를 한일교회가 화해와 선교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기회로 평가했다. 그는 "다음세대에게는 이전 세대가 느꼈던 것만큼 높은 벽이 없다"며 "역사는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지만 어른들의 미움까지 물려줘서는 안 된다. 서로 만나고 이해할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교 120주년을 앞둔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이제 재일동포의 신앙을 지키는 역할을 넘어 한국과 일본교회, 다양한 민족과 다음세대를 연결하는 선교공동체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장 목사는 "광복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가까워지는 것, 그것이 앞으로 한일교회와 다음세대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